평화롭게 살 권리. 평화롭게 마주할 권리.

시민 운동의 무게 중심이 활동가 중심으로 편재되어간다고 우려'해온' 시점에 
시민 운동과 지역 운동은 이러저러한 외부적 장애 요소와 마주하고 있다.

얼마전 공부방 회의에 다녀왔다.
전공협 공부방과 동거 내지 통합을 위한 내부회의 자리였다.
월세가 밀린지 몇개월이 되었기에 궁여지책에서 시작했지만,
그래도 비전은 만들어 보자고 열은 회의였다.

공부방 운동은 이제 마감했노라고 자평하면서도
그 마지막끈을 놓지 않기 위해 모두들 애쓰고 있었다.
난, 그냥 최고의 후원인이 되겠다고
거취를 밝혔음에도 그건 당분간 희망사항일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 8-9년동안 공부방과 함께했던 아이들이 이제 졸업을 한다.(일부는 졸업을 했다.)
나가면 소위 88만원 세대에 끼이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열심히 일하는 자세를 보여준다면,
월 120-150을 버는 친구가 되어있겠지만, 그것도 일정 정도 '운'에 좌우된다는 사실이 정말
자명해보인다.

그렇다면, 그냥저냥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까. 그래도 아직은 한 동네에서 사니
오며가며 보면서 따뜻한 눈웃음 정도만 나누는 것으로 유종의 미를 거둘까.

2.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만약, 커피 만드는데 관심있는 친구가 있다면 전광수 커피같은데 보내서 교육을 시키고,
커피 사업에 뜻맞는 소수의 투자자를 모아 착한 커피샵과 수익내는 커피샵을 고민하면서
그 친구들을 직원으로 채용해서 커피샵 사업을 한번 해보는 것.....

88만원 세대에 끼어가는 것보다는 나름 전문직을 찾게되는 것이 아닐런지...그리고,
동원형, 수동형에 익숙한, 그간 시민운동에 수혜입은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런지....
뭐, 돈있는 투자자의 경우 정기예금 이상의 수익 정도만 내는 착한 거래를 통한다면야
일정정도 유인체계가 있는 것이겠고....

이렇게 숱한 상상을 가끔 종종 해보기도 했다.

3. 암튼,
'**강연합니다, 언제 오세요..'라는 식의 대중동원도 이젠 프로들에게 힘이 부치는 때이다.

정말, 우리의 생활속의 운동을 연명하려면 면밀한 틈새찾기가 필요할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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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림

경향신문을 정기구독하게 된 계기는 이대근기자의 칼럼때문이다. 그의 차분하고 냉정한, 한편으로는 쉬운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진보'에 포지셔닝을 하고 있으면서도 '진보세력'에 대한 따끔한 질책도 가감없이 하기도 하고, 어떨때는 감성어린 진솔함도 묻어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동북아 역학관계도 아울러 사리에 맞게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았다.

얼마전, 정치학도이면서 날카로운 시니컬함으로 유명한 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국내 정치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한 가운데 그나마 청량제가 '목요일자 경향신문'이라고 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맞장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그의 죽음 이후, '살아가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되뇌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답답하고 어둑어둑하기만 했다.

그리고 문득 급하게 그 청량제가 생각났다,
그래서
내일자 경향신문을 들쳐냈다.

역시 명불허전이다.

덕수궁 돌담길의 초혼을 달래어
우리의 무기력함을 털어내고 희망을 만들자는 그의 은은한 메시지가 가슴 한켠 싸악....적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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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의 초혼(招魂)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줄지어선 사람들의 행렬이 꽤 길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해도 그들은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둠은 촛불을 밝혀야 할 때임을 알리는 신호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슬픔과 원망, 안타까움과 간절함,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노여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지 않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오직 꽃 한 송이를 바치기 위해 돌담길에서 자기의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소비하는 그들의 정서는 단순한 의례 행위를 넘는다. 무엇이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냈을까. 말을 쉽게 하는 이들은 노무현 5년의 치적을 칭송한다. 그러나 그런 장의용 언어는 일주일치도 유효하지 않은 너무 허허로운 것이어서 그의 영혼을 위로해 줄 수 없다. 사실 그의 5년 집권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그에 대한 기대만큼 그를 평가하는 기준이 높았던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조차 마지막 글에서 자신이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이 되는 걸 감당할 수 없다며 세평을 수긍했다. 자기 부정이었다. 대의에 자기 존재 전체를 던져왔던 그에게 자기 부정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결국, 그는 ‘나를 버려 달라’고 호소했다. 벼랑 끝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기보다 잡은 손을 놓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는 감히 그걸 운명이라고 했다. 여백 없는 종말, 찬란한 소멸이었다.

죽음으로써 살아난 ‘서민의 벗’

그는 유년의 추억이 서린 바위에 올라 다시 한번 자기를 던짐으로써 자신을 옥죄던 통치자로서의 딱딱한 껍데기를 깨버리고 그 안에 갇혀 있던 맨몸의 인간 노무현을 드러냈다. 그 드러냄을 통해 비로소 그는 자신을 해방했다. 집권 5년이 노무현의 중요한 일부인 것은 분명하지만, 평생 실패의 짐을 져야 할 5년이 전부는 아니었다. 5년보다 더 소중한 추억을 그는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득권의 일부였을 때가 아니라, 기득권에 도전했을 때, 권력에 안주했을 때가 아니라 세상의 부름을 받고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떨쳐 일어섰을 때, 자본가의 친구가 아니라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의 이웃이었을 때, 이제 말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 자책했던 민주주의·진보·정의라는 가치를 온 몸으로 껴안았을 때의 바로 그 아름다운 시절들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추억들이 과거에 묻히기보다 재현되기를 원했다. 그것이 진정 그의 운명이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죽음으로써 살아나야 했다.

대한문 앞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가난한 자들의 친구, 서민의 수호자.’ 그의 성공과 실패의 본질을 말해준다. 가식적인 찬사는 그를 거짓되게 할 뿐이다. 그의 실패에 깊이 절망해 본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그의 고뇌, 그의 슬픔에 닿을 수 있다. 그를 정당하게 비판했던 자만이 그의 죽음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그를 올바로 미워한 자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그의 돈 많은 친구나 한 자리씩 차지했던 고위관료, 그의 은혜를 입은 지인들이 진정 노무현의 가치를 사랑했을 것 같은가. 그들이 이 거리에 감도는 특별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가. 빽 없고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야말로 진실로 노무현을 사랑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정작 그가 죽어서야 그를 되찾을 수 있었다.

대한문 한 모퉁이에서 나지막하고 느린 단조의 읊조림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 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몇몇은 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속으로 울었다. 연대와 공감, 연민과 건강한 분노의 이름으로 그가 살아 돌아왔다. 그의 심장은 지금 이 거리에서 고동치고 있다. 다시는 우리의 벗을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시민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으러 거리로, 거리로 나오고 있다.

수백만의 노무현으로 부활하자

그래, 다시 시작하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우리가 이 길로 들어섰던 것일까. 이 ‘살인(殺人)의 권력’ 앞에 이렇게 초라하고 무기력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오직 순수와 정의의 뜨거움으로 달리던 그 많던 노무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시대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던 열정들은 어디로 갔나. 국가는 다시 압제의 도구로 변했고, 정치는 작동하지 않고 시민사회는 죽어가고 있다. 하나의 노무현이 죽어 수만, 아니 수백만의 노무현으로 부활하는 대반전을 맞이하자. 그래서 피 끓는 청춘의 시대로 돌아가자. 오, 정녕 꿈인가?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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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림